이 글은 제가 약 3개월 동안 잠들기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실제로 해본 것들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그때는 그저 버티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시도했고, 한참 뒤 SeaHeal을 만들면서 수면 연구와 진료 지침을 찾아 읽다가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경험 옆에 나중에 확인한 근거를 함께 적었습니다.
저는 보건학을 공부하고 공공보건 현장에서 오래 일했지만 수면 전문의는 아닙니다. 아래 내용은 한 사람의 경험과 공개된 연구를 정리한 것이며, 진단이나 치료를 안내하는 글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3개월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
기간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 무렵 매일 잠들기 전 스마트폰 메모장에 그날 몇 시에 잠들었는지 적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이러다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엔 그냥 습관이 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기록은 치료 현장에서도 쓰는 방법이었습니다. 불면증 인지행동치료(CBT-I)에서는 '수면 일지'를 쓰게 해서 잠자리에 든 시각, 잠든 것 같은 시각, 깬 시각 등을 적습니다.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기록을 보고 패턴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제 메모는 그렇게 체계적이진 않았지만, 방향은 틀리지 않았던 셈입니다.
3개월이라는 기간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2023년 유럽 불면증 지침이 따르는 국제 진단 기준에서는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깨는 문제가 주 3회 이상, 3개월 넘게 이어지고 낮 생활에 지장을 줄 때 '만성 불면장애'로 봅니다. 돌아보면 저는 그 경계선 근처에 있었습니다.
원인이 사라져도 불면은 남았다
불면이 시작된 계기는 분명했습니다. 이직을 앞두고 스트레스가 심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직을 하고 스트레스의 원인이 사라진 뒤에도 잠 못 드는 밤은 계속됐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불면은 원인이 사라져도 습관처럼 남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건 수면의학에서 오래전부터 설명해온 현상이었습니다. 1987년 스필먼(Spielman) 연구팀이 제시한 '3P 모델'은 불면에 관여하는 요인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취약성(Predisposing), 불면을 촉발한 사건(Precipitating), 그리고 불면을 계속 이어지게 만드는 요인(Perpetuating)입니다. 제 경우 촉발 요인은 이직 스트레스였지만, 그 뒤로는 잠을 걱정하는 마음, 침대에서 오래 뒤척이는 습관, 새벽에 시계를 확인하는 버릇이 불면을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이 모델의 요점은 촉발 요인이 사라져도 유지 요인이 남으면 불면이 이어질 수 있고, 그래서 치료도 주로 이 유지 요인을 겨냥한다는 것입니다.
효과가 없었던 것들
처음엔 다들 좋다고 하는 것부터 시도했습니다. 따뜻한 우유, 라벤더 오일, 취침 전 스트레칭. 솔직히 말하면 제게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 방법들이 누구에게나 소용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편안한 취침 전 습관 자체는 해로울 것이 없고, 몸의 긴장을 푸는 이완 요법은 진료 지침에서도 조건부로 권고하는 방법입니다. 다만 제 불면을 붙잡고 있던 것이 몸의 긴장보다는 잠에 대한 걱정과 습관 쪽이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양 세기는 오히려 역효과
"잠이 안 오면 양을 세라"는 조언은 제게 오히려 역효과였습니다. 숫자를 세는 행위 자체가 머리를 계속 깨워두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실험이 있습니다. 2002년 옥스퍼드대 하비(Harvey)와 페인(Payne)은 불면을 겪는 41명을 세 집단으로 나눠 잠들기 전 떠오르는 잡생각을 다루는 방법을 비교했습니다. 편안하고 흥미로운 장면을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보게 한 '심상 주의전환' 집단은 잠들기까지 걸린 시간과 원치 않는 생각이 줄었지만, 막연하게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라고 안내한 집단에서는 그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리는 일이 걱정이 끼어들 틈을 막을 만큼 머릿속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제가 느낀 역효과도, 단조로운 숫자 세기가 걱정을 막아줄 만큼 주의를 붙잡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수면제: 잠은 들었지만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아 며칠 먹어본 적도 있습니다. 잠은 들었지만 다음 날 몽롱함이 하루 종일 이어져서 그만뒀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미루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오해가 없도록 조심스럽게 덧붙이겠습니다. 2023년 유럽 불면증 지침은 만성 불면의 1차 치료로 CBT-I를 권하고, 벤조디아제핀 계열 등의 수면제는 대체로 4주 이내의 단기 사용을 적정한 범위로 봅니다. 또 약에 따라, 특히 몸에 오래 머무는 약일수록 다음 날까지 이어지는 잔류 효과와 운전 능력 저하에 주의해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제가 겪은 다음 날 몽롱함도 이런 잔류 효과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수면제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필요한 사람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되는 약이고, 중단하거나 용량을 바꾸는 일은 처방한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약을 먹고 불편한 점이 있다면 혼자 참거나 판단하지 말고 의사에게 그대로 이야기하시길 권합니다.
효과가 있었던 것들
1. 시계를 서랍에 넣기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시계를 안 보는 것"이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새벽에 깼을 때 몇 시인지 확인하는 순간 "몇 시간밖에 못 잤네"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시계를 아예 서랍에 넣었습니다.
이 경험은 연구로도 뒷받침됩니다. 2007년 탕(Tang), 슈미트(Schmidt), 하비(Harvey)의 실험에서는 잠자리에서 시계를 보도록 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잠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잠들기까지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불면증이 있는 38명을 대상으로 한 두 번째 실험에서는 시계를 본 사람들이 잠드는 데 걸린 시간을 실제보다 더 길게 느끼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시계 확인이 잠들기 전 걱정을 키워 불면을 유지시킬 수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요즘은 시계 대신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는 경우가 많으니, 새벽에 휴대폰을 집어 드는 습관도 같은 맥락에서 돌아볼 만합니다.
2. 완전한 정적 대신 낮은 빗소리
두 번째는 소리였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조용한 게 잠에 좋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완전한 정적 속에서는 오히려 귀가 예민해지고, 냉장고 모터 소리나 옆집 발소리 같은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빗소리를 낮게 틀어두니 그런 잡음들이 자연스럽게 묻혔습니다.
이건 '소음 마스킹'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2005년 스탠치나(Stanchina) 연구팀은 건강한 참가자들에게 녹음한 중환자실 소음을 들려주며 재웠는데, 잠에서 깨는 반응은 소음의 절대적인 크기보다 배경 소리와 가장 큰 소리 사이의 '차이'에 좌우됐습니다. 여기에 일정한 백색소음을 함께 깔자 그 차이가 줄면서 각성 횟수가 시간당 약 48회에서 16회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조용한 방에서 도드라지던 냉장고 소리와 발소리가 빗소리가 깔리면서 덜 거슬리게 된 것도 같은 원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소리가 만능은 아닙니다. 2021년 체계적 문헌고찰(38편 분석)은 지속적인 소음이 수면을 개선한다는 근거의 질을 "매우 낮다"고 평가했고, 2026년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에서는 50dB 핑크 노이즈를 밤새 틀었을 때 렘수면이 하룻밤 약 19분 줄었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쓰더라도 주변 잡음이 가려질 정도까지만 되도록 낮게 틀고, 가능하면 타이머로 꺼지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소리별 비교는 자연 소리 가이드의 빗소리 항목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3. 누워서 자려고 애쓰지 않기
세 번째는 "누워서 자려고 애쓰지 않기"였습니다. 20분쯤 지나도 잠이 안 오면 그냥 일어나 다른 방에 잠깐 앉아 있다가 다시 누웠습니다. 침대와 '잠 못 드는 곳'이라는 연결을 끊어내는 게 생각보다 중요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건 '자극 조절법'이라는, CBT-I의 핵심 요소와 거의 같은 방법이었습니다. 졸릴 때만 잠자리에 들고, 잠이 오지 않으면 침대에서 나왔다가 졸릴 때 돌아오며, 침대는 잠 이외의 일에 쓰지 않고,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나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2021년 미국수면의학회(AASM) 임상 진료 지침은 만성 불면증이 있는 성인에게 여러 요소를 묶은 CBT-I를 강하게 권고하고, 자극 조절법을 단독으로 쓰는 것도 조건부로 권고합니다. 반면 '수면 위생' 교육만 단독으로 하는 것은 치료로 권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습관 몇 가지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침대와 잠의 연결을 다시 만드는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저는 읽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불면증 가이드의 CBT-I 부분에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지냅니다
지금은 매일 같은 시간에 빗소리와 밤소리를 낮은 볼륨으로 틀어두고 잡니다. 처음엔 SeaHeal을 직접 만들면서 테스트용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소리가 없으면 오히려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가 됐습니다. 제게는 이 소리가 '이제 잘 시간'이라는 신호처럼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입증된 효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잠자리에 드는 과정을 매일 비슷하게 반복한다는 점에서, 침대와 잠을 일관되게 연결하려는 자극 조절법의 취지와 통하는 부분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가끔 못 자는 밤이 있습니다.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그 밤이 무섭지는 않습니다. 몇 시간 뒤척이다 잠들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제게는 잠을 못 자는 것 자체만큼이나 "오늘도 못 자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제 경험에서 정리한 것
같은 고민을 하는 분께 제 경험과 나중에 찾아본 근거를 합쳐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스트레스 같은 계기가 사라졌는데도 불면이 이어진다면, 뒤척임·시계 확인·잠 걱정처럼 불면을 붙잡는 습관이 없는지 살펴보기
- 새벽에 깨더라도 시계나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지 않기
- 한참 잠이 오지 않으면 침대에서 나와 조용히 있다가 졸릴 때 돌아가기
- 소리를 쓴다면 주변 잡음이 가려질 만큼만 낮게, 가능하면 타이머와 함께
- 수면제를 먹고 불편한 점이 있으면 혼자 끊지 말고 처방한 의사와 상의하기
- 몇 주 넘게 이어지면 CBT-I를 받을 수 있는 수면 전문 진료를 알아보기
참고한 연구
- Spielman AJ, Caruso LS, Glovinsky PB. (1987). A behavioral perspective on insomnia treatment. Psychiatric Clinics of North America, 10(4), 541–553. PubMed
- Riemann D, Espie CA, Altena E, et al. (2023). The European Insomnia Guideline: An update on the diagnosis and treatment of insomnia 2023. Journal of Sleep Research, 32(6), e14035. DOI · PubMed
- Harvey AG, Payne S. (2002). The management of unwanted pre-sleep thoughts in insomnia: distraction with imagery versus general distraction. Behaviour Research and Therapy, 40(3), 267–277. DOI · PubMed
- Tang NKY, Schmidt DA, Harvey AG. (2007). Sleeping with the enemy: Clock monitoring in the maintenance of insomnia. Journal of Behavior Therapy and Experimental Psychiatry, 38(1), 40–55. DOI · PubMed
- Stanchina ML, Abu-Hijleh M, Chaudhry BK, Carlisle CC, Millman RP. (2005). The influence of white noise on sleep in subjects exposed to ICU noise. Sleep Medicine, 6(5), 423–428. DOI · PubMed
- Riedy SM, Smith MG, Rocha S, Basner M. (2021). Noise as a sleep aid: A systematic review. Sleep Medicine Reviews, 55, 101385. DOI
- Basner M, et al. (2026). Efficacy of pink noise and earplugs for mitigating the effects of intermittent environmental noise exposure on sleep. Sleep, 49(5), zsag001. DOI
- Edinger JD, Arnedt JT, Bertisch SM, et al. (2021).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treatments for chronic insomnia disorder in adults: an American Academy of Sleep Medicine clinical practice guideline. Journal of Clinical Sleep Medicine, 17(2), 255–262. DOI · PubMed